AHORITA

블로그 이미지
_미믜

Article Category

+ (441)
간거잘앙 (132)
잘앙아님 (123)
본거잘앙 (164)

Recent Comment



할머니. 초팔일날 돌아가셨다.  


상을 치르고 삼일만에 샤워하고, 머리감고, 밀린 잠을 잔 후. 컴퓨터 앞에 앉았다. 밤낮이 없었던 3일.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. 가시는 할머니께 마지막으로 손녀 얼굴 보여드리려고 입관에 참관했었는데 머리가 멍 해졌다. 할머니는 항상 내가 잠든 후에 주무시고, 일어나기 전에 깨셔서. 주무시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. 


-


내가 좀 크고 나서는, 명절이고 제사고. 가족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. 그러면 안되지만. 과제 때문에 바쁘다. 귀찮다는게 이유였다. 그 즈음, 할머니는 허리를 다쳐 몸져 누우셨다.

"할머니 많이 아프시다. 다녀와라"  아빠의 당부에 부산으로 향하려던 내일로 루트를 바꿔 구미에 들렀다. 몇 년만에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. 


할머니는 풍채가 좋으시고 목소리도 날카롭고 기운이 세신 분이었다. 조금 무서웠다고 할 만큼. 손녀에게 가장 따뜻한 자리와, 가장 맛 좋은 음식을 내주시지만 나에겐 그래도 좀 드세고 까탈스러운 노인네였다.  

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본 당신은. 믿을 수 없었다. 혼자서는 식사를 하고 뒷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늙으셨다. 풍채 좋으시던 모습은 어디가고 배싹 말라 축 늘어진 가죽에 뼈가 온연히 다 보였다. 손을 들어 내 얼굴을 만지기도 힘드셨다. 몸은 아프지만 정신은 또렸하셨다. 어찌. 한살, 두살, 세살, 네살, 다섯살..... 고등학생의 나 까지 다 기억하셨다. 눈물이 펑펑 났다. 


손이 요만 했는데 벌써 이래 컸노.

마루 기둥에 마카 원싱이처럼 잘 기올라갔는데.

뒷산에 할매 따라 가서 낙동강 구경하던거 생각나나. 

영철이랑 아카시아도 마이 따뭇제. 할매 마이 따라댕겼는데.... 


당신이 이렇게 될 때까지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. 

할머니 손 잡고 펑펑 울었다. 죄책감인지 그리움인지. 뭘 잘했다고.


-


할머니, 좋은 곳으로 가세요. 


'잘앙아님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샨타람_그레고리데이비드로버츠  (0) 2012.06.20
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_박민규  (0) 2012.06.16
메인사진모델 옹  (0) 2012.02.15
롯데 페넌트레이스 2위  (0) 2011.10.05
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  (0) 2011.09.06
낙산공원에서  (0) 2011.08.29
나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  (0) 2011.08.16
헌옷헌책기부_2  (0) 2011.07.15
헌옷헌책기부_1  (0) 2011.07.04
할머니  (0) 2011.05.13
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  (0) 2011.05.05
Trackback 0 and Comment 0